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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위치 : HOME > 소설.시.수상.음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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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판, 하드커버
먼저 책표지 그림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검게 뚫린 동공에 눈썹도 없이 독자 정시하는 얼굴. 표지가 작다는 듯 표지 바깥까지 그리고 있는 둥근 원호. 입술에서 한참 떨어진 아래쪽에 자리잡은 턱, 턱에 쓰인 책제목. 심하게 말하면 끔찍하다고 할 만한 소녀, 이 소녀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이 고아 소녀는 보육원 또래들의 냉대와 따돌림 속에 살다가 갑자기 늙고 야위어 목숨을 잃는다. 사회 부적응자를 통해 사회를 꼬집는 것은 드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섬뜩함에서 이 소설은 이전의 어떤 작품과도 견줄 만하다.
동독 출신의 작가가 그리고 있는 고아 소녀의 힘겹고, 무기력하며, 단절된 생활은 곧바로 통일 후 동의 암울한 상황과 연결지어진다.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책 내용은 책표지처럼 끔찍하다. 마치 음침한 페로 동화를 읽는 것처럼, 악몽을 꾸는 것처럼 말이다. 하긴 제대로 된 사춘기도 없이 곧바로 시들어버린 동독의 신념 역시 이만큼이나 끔찍한 것인지도 모른다. 늙은 아이가 보여준 것은 대단히 인상적인 사회부적응이며, 여러 가지 상황이 이 부적응에 겹친다.1999년 7월에 출간되어 지금까지 다섯 나라(덴마크, 프랑스, 헝가리, 이스라엘, 스웨덴)에서 번역한 {늙은 아이 이야기}는 제니 에르펜베크의 첫 소설로서 그해 가장 주목할 만한 데뷔작이라는 평을 들었고 여러 차례 문학상을 수상했다. 비현실적 상황을 아주 구체적으로 서술하는 문체가 카프카와 비교되기도 한다. 이름도 없는 이 '늙은 아이'는 전후 도이치 문학에서 오스카(귄터 그라스, {양철북})와 한스(하인리히 뵐, {어느 어릿광대의 견해})를 이어받은 또 하나의 사회적 부적응아의 전형을 보여준다.
성장을 거부한 오스카나 떠돌이 어릿광대 생활을 고집하는 한스의 말과 행동에서는 파시스트가 판치는 현실과 바로 어제 저지른 전대미문의 반인륜적 악행에 대한 죄의식이 없는 동시대인을 향한 날카롭고 적극적인 비판의 칼날이 번득인다. 그러나 아동복지원의 획일적 질서와 규율에 순응하고 아이들의 위계질서에서조차 맨 아랫자리를 차지하려는 '늙은 아이'는 결코 남을 탓할 줄 모르는 매우 소극적일 뿐만 아니라 자학적이기까지 한 행동을 보인다. 기괴한 소설 형식과, 내면세계에 대한 환상적 이미지로 이어지는 도이칠란트 전통은 이제 제니 에르펜베크가 물려받았음을 알 수 있다.
1967년 동베를린에서 태어난 제니 에르펜베크는 처음에 제본기술을 익혔으나, 곧 베를린 국립오페라하우스에서 소도구와 의상담당 조수로 활동했고, 한스 아이슬러 음악학교에서 연극학과 오페라연출을 공부했다. 이때 하이너 뮐러도 제니 에르펜베크를 가르쳤다고 한다. 1991년 이후로는 조연출 생활을 거쳐 독자적인 연출가로서 베를린과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많은 오페라 작품을 연출했다.
소설 {늙은 아이 이야기}는 이와 같은 음악활동과 동시에 작가로서 에르펜베크의 재능을 드러낸 처녀작이지만 2000년 8월에 출간된 희곡 {고양이의 인생유전}이 같은 해 그라츠 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도이칠란트 여러 극장에서도 공연목록에 올라 소설가로서뿐만 아니라 희곡작가로서도 인정을 받았다. 에르펜베크는 2001년 9월에 단편소설집 {하찮은 물건Tand}을 출간했는데, 여기 실린 [시베리아]라는 작품이 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에서 개최한 2001년도 잉에보르크 바하만 기념 낭독경연대회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아 도이치어권 평단으로부터 장래가 촉망되는 신인작가로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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